
[작가론] 이란의 카스피해 근처에서 태어난 그녀는 테헤란에서 프랑스 고등학교와 미술학교, 그리고 이어.. 한상정ㅣ2003.12.31
이란의 카스피해 근처에서 태어난 그녀는 테헤란에서 프랑스 고등학교와 미술학교, 그리고 이어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석사를 마친 이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의 장식미술학교(LArt deco)로 자신이 되고 싶어하던 포스터 작가가 되기 위한 수업을 계속하기 위해서 이란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결국은 약간의 방황을 하게 되는데, 그녀가 하고 싶어했던 포스터는 70년대의 폴란드 학파에서 영향 받은 수공업적이고 손맛을 많이 들이는 경향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대부분이 컴퓨터를 이용한 작품이 가르쳐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학교의 선생들은 그녀에게 일러스트를 해보라고 권한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그녀는 아는 친구의 소개로 "보쥐 아틀리에(Ateliers de Vosges)"라는 이미 유명한 만화가들이 모여 있던 작업실에 드나들게 되었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크리스토프 블랑(Christophe Blain), 다비드 베(David B)등 프랑스 만화의 독립만화군의 중요한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다비드 베의 권유로, 사트라피가 언제나 이야기하던 이란에서의 자신의 가족과 사회사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게 되는데, 2000년에 <아소시아시옹(Association)>에서 출간된 이『페르스폴리스(Persepolis)』는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8,000부를 찍은 초판이 바로 15,000부가 팔려서 곧이은 재판, 총 25,000부가 팔려나갔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여성 만화가를 발견하기 힘든 프랑스 만화의 장에서 여성 만화가라는 점에서, 또 이 팔려나간 책들이 전혀 만화전문서점이 아니라 일반 서점에서 반 이상이 팔려나갔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의 인터뷰에 따르면 “유통사에서 내 책이 일반서점에서 많이 팔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믿기 힘들었지만, 실지로 사인회의 요청의 반 이상이 일반서점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단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것만은 아니다. 2001년 앙굴렘 페스티발에서도 이 첫 번째 작품에 “감동성”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2002년의 앙굴렘에선 이 시리즈의 2번째 권에 “최고의 시나리오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말로도 다비드 베의 그림체와 이야기하는 방식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이 작품은, 흑백으로 된 그녀의 자서전이다. 간략한 그림체, 어린 나이의 소녀가 보던 사회와 가족에의 풍경, 정부가 바뀜에 따라 학교에 얼굴을 가리고 갔다가 또는 그냥 가기도 했던 기억, 이라크와 전쟁으로 자신의 친한 친구의 죽음, 정치범인 삼촌의 사형, 그녀의 삐딱한 성향으로 위험할까봐 걱정된 부모들이 그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낸 것, 외국에서의 향수병과 외로움으로 결국은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오는 것등 그녀의 기억에 새겨져있던 이란이 다시금 독자들에게 사회가 낳은 폭력을 뒤돌아보게끔 해준다. 가끔씩 등장하는 어린 소녀의 엉뚱함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곧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그 비극성은 더욱 커진다. 간략한 한 에피소드. 이라크와의 전쟁중에 사트라피는 학교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해 발표하면서 우는 아이를 “네 아버진 영웅이었어”하며 위로해준다. 그 아이의 답은 “영웅이 아니라도 아버지가 살아있는게 더 좋아.”
현재 4권까지 출간된 그녀의 첫 번째 만화작품 이외에도 그녀는 아동들을 위한 동화책에 자신이 원했던 대로 손맛이 살아나는 일러스트들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 갑자기 이란에 대한 여러 문학, 음악, 건축 등 총체적으로 이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은 꽤나 오래 기억될 것이다.